배곧영동교회

목회칼럼

무너진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우는 가족공동체

본향을 바라보는 신앙
작성자 : 김종설 목사
작성일 : 2021.08.07 / 조회수 : 125

본향을 바라보는 신앙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 25:7-8)

 

아브라함은 향년 175세에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후 약속의 땅으로 옮겨와 정확히 100년을 살고 죽은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의 죽음을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한다.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구약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이다. 이것은 단지 가족묘지에 매장되었다는 뜻을 넘어선다. NLT 성경은 “joined his ancestors in death”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미 먼저 천국에 가 있는 선조들과 만나는 관문이었고,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는 복된 출발점이었다. 아브라함은 평생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았고, 노년에도 이 소망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 히브리 11장 16절이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성인데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고,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놓고 떠나야 한다. 이 땅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치 어릴 때 땅따먹기를 하다가 엄마가 부르면 다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땅을 땄어도 엄마가 부르면 미련 없이 엄마 품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신앙의 목적은 다시 돌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움켜쥐고 나의 아성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믿음의 선조들이 있고, 무엇보다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주실 주님이 계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 헤셀은 “나이 듦은 패배가 아니라 성공이며, 형벌이 아니라 특권이다”고 했는데, 늙어갈수록 육체도 쇠하여지고 가진 것도 점점 없어지고 거동도 힘들어지겠지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천국소망을 붙든다면 우리의 노년은 바래지고 퇴색되어지는 길이 아닌 빛으로 이어지고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시편 92편의 시인의 고백이 우리의 노년이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의인은 ...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올곧으심을 나타낼 것이다.”(시 9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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